“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때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 을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통영관광개발공사는 정지용 시인이 기행문을 통해 통영풍광을 그린 통영 시비를 그림 같은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신선대에 설치하고 오는 26일 오전 11시에 시비 제막식을 갖는다고 밝혔다.
시비는 데크를 깐 신선대 중앙에 높이 1.2m에 폭 0.8m의 마천석에 앞면에는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는 정지용시인 시가 그리고 뒷면에는 그의 약력이 새겨져 있다.
충북 옥천 출신의 정지용시인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통영과 남해안 등을 여행하면서 통영 기행문 6편을 남겼으며 이번에 시비에 새겨진 글은 그 중 다섯번째 글의 일부다.
특히 이 글은 미륵산 신선대에서 통영항을 바라보며 쓴 글로 알려져있다.
통영은 1950년대에 경복호, 한양호, 갑성호 등의 대형여객선들이 부산에서 통영, 삼천포, 여수항까지 오가며 운행 하였으며 그 당시 여행객들은 통영항에서 충무김밥을 사 먹는 등 그 때의 통영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다.
통영시와 관광개발공사는 미륵산케이블카 관광객을 위해 상부역사에서 산 정상까지 등산로에 친 환경적인 데크를 깔아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한편, 정상표지석 교체, 정지용의 시비 건립, 통영병꽃, 진달래 군락지 등을 가꾸는 등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미륵산 신선대에 설치된 정지용시인의 통영시비, 통영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한편 이 날 제막식 행사는 통영관광개발공사(사장 신경철) 주최, 통영예술의 향기(통영문화예술인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실시되며, 식전 행사로는 창작연 날리기와 성악 공연 등이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정지용 시인의 유족과 옥천군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하여 그 의미를 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 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 차라리 여기에서
흐르는 동서 지류가 한려수도는커니와 남해 전체의 수역을 이룬 것 같다.\"
정지용의 ‘통영.5’중에서
동판 설명문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졸업한 후 모교 휘문고보 교사, 경향신문 주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26년 [학조] 창간호에 시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발표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로 시작하는 시 <향수>는 전 국민의 애창시로 잘 알려져 있다.
6.25 때 납북되어 생사가 모호해 그 행적에 대한 오해로 금기되었던 그의 작품들은 1988년 해금 조치되었다. 그 이후, 그를 추모하는 이들에 의해 지용회가 결성되고, 문학축제인 지용제와 더불어 정지용문학상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유작으로는 [정지용시집] [백록담] [문학독본] [산문] 등이 있다.
시비 뒷면 내용
8.15해방 이후 시인 정지용(1902~ ?)은 부산에서 통영을 거쳐
진주를 여행하면서 18편의 기행문을 써 이를 「남해오월점철」
(南海五月點綴)에 묶어 남겼다. 그 중 통영에서는 청마 유치환
선생의 안내를 받아 제승당, 충렬사, 미륵산 등을 둘러보며
6편의 기행문을 썼다.
특히 이 중 통영 5는 미륵산에서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시인으로서 느낀 점을 너무나 진솔하고 생생하게 표현하여
지금도 이 글을 읽으면 그 때 이곳에 서있던 선생의 모습이
그려진다.
선생의 고향 충북 옥천에서 보내 온 생가터 흙을 시비(詩碑)속에
함께 묻어두었다.
통영인터넷뉴스 ty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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