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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統營의 名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04-09
통영(統營)은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있던 곳이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閑山島)에서 3년 6개월을 근무하였고, 조선과 일본 수군과의 대규모 전면전이었던 한산대첩도 바로 이곳에서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후인 1604년에 통제영 건물들이 통영의 주산인 여황산 자락에 세워졌다. 그 중심건물인 세병관(洗兵館)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통제영 부속건물 가운데는 십이공방(十二工房)도 있었다. 여러 가지 공산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십이공방은 통영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 수군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조달하기 위한 군수품 공장이었다. 선자방(扇子房), 입자방(笠子房), 총방(?房), 상자방(箱子房), 화원방(畵員房), 소목방(小木房), 야장방(冶匠房), 두석방(豆錫房), 동개방(筒箇房), 칠방(漆房), 화자방(靴子房), 안자방(鞍子房), 은방(銀房) 등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공방에서 부채, 갓, 탕건, 동구리, 그림, 목가구, 장석, 화살 및 화살통, 나전칠기, 말안장, 금은장신구, 신발 등을 만들어 내었다.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나전칠기를 하나 만드는 과정을 보면 제일 먼저 소목방에서 백골(나무 뼈대)을 만들고, 하칠방으로 옮겨 가서 일차 옻칠을 한다. 그 다음에는 패부방에서 나전(전복 껍데기)을 붙이고, 상칠방에 가서 다시 옻칠을 하고, 두석방에 가서 장석을 단다. 분업화는 전문화를 의미하고, 전문화는 그 품질이 그만큼 고급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통제영 수군들을 위한 군수품 용도였지만, 그 뒤에 영조·정조 대에 와서는 왕실과 일반에게 공급되는 민수품(民需品) 용도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그 품질이 전국적으로 소문났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앞에 통영 자가 들어가는 통영탕건, 통영갓, 통영소목, 통영나전칠기, 통영장석 등은 조선시대 값비싼 최고의 명품으로 통하였다.
이 통영명품의 명맥이 근대에까지 이어지면서 통영은 돈과 물류의 집산지가 되었다. 변두리 남쪽 해안가인 통영에서 유치환, 윤이상, 박경리를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인이 배출될 수 있었던 사회경제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소급해 올라가면 통영명품의 계기는 이순신과 통제영이 만든 셈이다.

- 2008. 4. 8일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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