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욕지도(欲知島)’ 39개 섬으로 이뤄진 욕지면 ‘맏형’… 지중해 분위기 물씬
봄을 만나려면 그 섬에 가야 한다. 남쪽바다 푸른 수평선을 도화지 삼아 점점이 뿌려진 보석 같은 섬들.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의 훈훈한 기운에 욕지도의 봄은 시나브로 수평선 색깔을 닮아간다.
동백꽃보다 붉은 지붕과 동백잎보다 푸른 지붕이 처마를 맞대고 속삭이는 바닷가 마을.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는 아찔한 경사의 노적마을 보리밭에서 종달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오른다..
경남 통영 앞바다의 욕지도(欲知島)는 섬의 이름부터 사람을 궁금하게 한다.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에 한려수도의 넉넉한 품에 안긴다.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법으로 왜선 47척을 불태우던 그날처럼 한산도의 하늘과 바다가 화염처럼 붉게 물든다. 때마침 부지런한 고깃배 한 척이 갈매기 떼를 거느리고 개선장군처럼 카페리 옆을 스친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32㎞ 떨어진 욕지도는 3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욕지면의 본섬이다. 연화도 매물도 비진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울타리처럼 에워싸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연화열도의 맏형인 욕지도가 남쪽바다 끝에서 먼바다의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기 때문이다.
빨간등대와 노란등대가 인상적인 욕지도의 항구는 한 장의 그림엽서. 해발 392m 높이의 천왕봉 자락에 둘러싸인 원형의 항구와 고깃배들, 그리고 교회의 하얀 첨탑과 건물들이 지중해의 작은 섬을 닮았다. 하지만 항구의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비릿한 생선 냄새와 다방 간판이 낙도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주면 2400여 명이 거주하는 욕지도는 작지 않은 섬이다. 한산도와 매물도처럼 유명세를 타지는 않았지만 한때 남해의 어업전진기지로 파시가 형성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욕지도 주민들은 지금도 어업과 고메로 불리는 고구마 농사로 생계를 꾸리지만 최근 낚시꾼과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펜션도 늘어나고 있다.
욕지도 여행의 매력은 지도 한 장 들고 섬 곳곳의 비경을 찾아가는 것. 배에 싣고 온 차를 타고 21㎞ 길이의 해안도로를 달리거나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산행로를 트레킹하다 보면 숨어 있던 비경을 발견하게 된다. 섬이 크지 않기 때문에 첫 배로 들어와 마지막 배로 나가도 시간이 남을 정도.
항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 먼저 호젓한 분위기의 쉼터를 만난다. 이곳에 설치된 벤치는 고즈넉한 항구 풍경과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욕지도의 창(窓). 산허리를 부드럽게 휘감은 해안도로와 봉긋봉긋 솟은 섬들이 봄바람을 타고 오선지의 음표처럼 흐른다.
섬 북단을 돌아 서쪽 해안으로 접어들면 새떼처럼 많던 섬은 사라지고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옴폭 파인 만 깊숙이 자리잡은 포구는 도동마을.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과 아직도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이 제주도의 봄을 무색하게 한다. 욕지도에 감귤이 재배된 것은 제주도보다 앞선 1968년. 우장춘 박사가 기후가 따뜻한 이곳에 감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도동마을과 덕동마을을 지나면 바다로 돌출한 지형인 양판구미 입구에 둥지를 튼 유동마을이 나온다. 거친 파도와 몽돌의 합창조차 아득한 원시림에는 새에덴동산이라는 기이한 건축물이 여행객들을 맞는다. 새에덴동산은 11년 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정착한 최숙자 전도사와 윤지영 목사 모녀가 맨손으로 건설한 믿음의 동산. 돌가루 반죽 조각으로 야곱의 우물 등 성경에 등장하는 17개 장면을 재현했다.
선율처럼 흐르는 욕지도 북서쪽 해안이 여성적이라면 깎아지른 벼랑과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남동쪽 해안은 남성적이다. 삼여전망대 절벽 아래에 위치한 삼여도는 아찔한 모습의 기암괴석. 송곳처럼 수면을 뚫고 불쑥 솟은 바위 두 개가 해안 쪽의 작은 바위를 감싸고 있다. 삼여도 너머로는 먼바다를 응시하는 펠리컨 형상의 바위도 보인다.
해안도로는 혼곡에서 산책길이나 다름없는 등산로를 만난다. 욕지도의 등산로는 동쪽 끝 야포의 일출봉을 시작으로 망대봉, 옥동, 혼곡, 대기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약과봉을 통해 항구로 내려온다. 약 4시간 30분짜리 코스지만 욕지도의 진수만 맛보고 싶다면 혼곡에서 할매바위와 매바위까지 다녀오는 짧은 코스를 선택해도 된다. 왕복 1시간20분 코스로 매바위에 서면 항구 너머로 한려수도를 수놓은 수많은 섬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섬 동쪽의 망대봉 자락에는 욕지도 최고의 비경이 숨어 있다. 바로 이슬이 쌓여 생겼다는 뜻의 노적(露積)마을이다. 급경사의 비탈에 들어선 노적마을은 자연과 인간이 만든 조각 작품. 무인도 하나가 한 뼘쯤 자란 부챗살 모양의 보리밭과 마을이 행여 굴러 떨어질까 바닷가 언덕을 떠받치고 있다. 수평선을 수놓은 연화도와 매물도도 이곳에서 보면 노적마을을 빛나게 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섬의 이름부터 궁금한 느낌표와 쉼표의 섬 욕지도. 알고자 하거든으로 해석되는 욕지(欲知)는 노적마을의 비경을 가슴에 새긴 후에나 체득하게 되는 깨달음이다.
국민일보 2008. 2. 28 / 박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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